애당초 인간이 악하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생존 본능을 가졌으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 생존을 위해서는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미약한 존재로 태어날 뿐이다. 갓난아기를 '천사'라고 부르는 까닭은 아기는 사랑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아이가 성장해 감에 따라 아이의 마음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이때 타고난 공격적 본능이 너무 크거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동일시할 대상이 없어 자아와 초자아 발달에 이상이 생기면 아이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제어할 힘을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 상처를 많이 받을 경우 분노는 아이의 타고난 공격성과 합쳐져 강한 에너지가 부하된 위험한 시한 폭탄처럼 되어 버린다. 위험한 충동을 행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음에도 그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그를 악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악이 악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악한 부분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악마 같은 측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쳐들고 우리를 유혹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만 보더라도 낮에는 점잖고 교양 있는 지킬 박사가 밤만 되면 추악한 하이드 씨로 변하지 않는가.
사실 인생은 평생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만 마음속의 유혹에 더 많이 흔들린다. 어릴 적에는 형제자매끼리 과자나 부모님의 사랑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형제자매에 대한 질투가 심해지면 그들이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는 친한 친구가 성적이 더 잘 나오면 그를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 하고,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며, 남들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그들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강한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그들이 실패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나에게 모욕을 준 사람이 사고가 나기를 바란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홀한 섹스를 꿈꾸고, 금기시된 모든 것을 열망하기도 한다. 때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아무것이나 잡히는 대로 파괴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게다가 성장을 멈춘 우리의 마음은 극히 자기중심적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심한 비난과 비판을 쏟을 행동이 내가 원하는 경우에는 정당하고 옳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옳으며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보라. 그들은 남들이 탈당할 때는 이기적이고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때면 그것은 대승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정말로 믿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에겐 남들을 판단하는 척도와 자신을 판단하는 척도가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결코 모순이 아니다. 애당초 자신은 남들과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종족인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들이 하면 불륜이라고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이런 현상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나치는 대공황으로 독일이 살기 어려워지자 그렇게 된 게 모두 유대인 때문이라며 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열등한 민족인 유대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나르시시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내 안의 욕망만 옳고 다른 사람의 욕망은 천하고 나쁘다는, 극단적인 자기 몰두의 결과인 것이다. '내 안에도 악마는 있지만 나치처럼 심하지는 않아' 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면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옛날 어느 왕국에 유명한 성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비로웠으며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어느 날 왕이 유명한 화가에게 성자의 초상화를 그리라 명했다. 그림이 완성되던 날 왕은 연회를 열었다. 드디어 트럼펫이 울리고 그림의 휘장이 걷혀졌을 때 왕은 초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초상화 속의 성자 얼굴이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도한 놈!"
분노한 왕은 신하들에게 당장 화가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성자가 왕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왕이시여, 이 초상화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닏. 이 그림을 보기 직전까지도 저는 온 힘을 다해 저 초상화에 그려진 모습처럼 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자마저도 매일같이 자신 안의 악마와 싸우고 있음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런데 사회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된 젊은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 넓은 세상에 펼치고 싶은 마음에 호기가 넘친다.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고서 성공을 향해 달리는 그들은 욕망에 몰입되며 다시금 나르시시즘의 전지전능함에 빠진다. 특히 서른 살은 성공에의 야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시기이다. 남을 짓밟고라도 위로 올라가고 싶은 야망, 성공하고 있는 동료를 끌어내리고 싶은 시기심,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음 등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악마가 고개를 치켜든다. 그래서 서른 살은 위험하다.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내 안의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들과 싸워야 하고,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마음과도 싸워야 한다. 남들을 짓밟고라도 성공하고 싶은가. 다른 사람의 환호와 경탄을 받고 싶은가. 때론 방해하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싶지는 않은가.
누구에게나 악마가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나쁜 마음이 들 수 있으며, 나쁜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를 억누를 필요도 없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위험한 욕망들을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악마적 요소들은 승화되어 우리의 삶에 건강한 활력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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