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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by 해보애리스 2021. 12. 22.

"난 네가 싫어."

누구든 이런 말을 들으면 일순간 몸이 굳어 버린다. 만약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나를 싫어한다'라는 생각은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천재 청년인 윌이 그런 경우다.

윌은 어렸을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 파양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어느 양부모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욕설과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한 기억 탓에 그는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를 품게 되었다. 그는 보스턴 빈민가에 살면서 MIT 공대에서 청소 일을 한다.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떤 분야든 혼자서 책을 통해 깨치는 비상한 머리를 가진 그는 친구들과 함께 하버드 대학생들과 논쟁을 벌여 그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리고는 승리의 기쁨에 취하곤 한다.

어린 시절 버림받고 학대당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나쁘기 때문에 버림받고 학대당했다고 느낀다. 그런 무력감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윌은 '지식화(intellectualization)'라는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이용해서 만나는 사람을 모두 조롱거리고 만들고 무력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무시하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이기는 순간조차도 외롭다고 느낀다. 또다시 버림을 받을까 봐 어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윌은 하버드 의대생인 스카일라를 만나 사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다. 스카일라는 떠나며 윌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넌 너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나한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

내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설령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간다고 해도 나를 버리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브루노 베테르하임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 안에서 자신을 지탱시킨 힘은 "누군가가 마음속 깊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 이라고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도 내 운명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해 주는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듀크 대학교 메디컬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위험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배우자 혹은 친한 친구가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살아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만큼 친밀한 관계는 사람을 살게 만드는 큰 힘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초기 성인기에 완수해야 할 발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과 맞지 않아 싫은 사람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직장 동료나 사업상 만나야 하는 사람들, 새로운 이웃들, 배우자의 가족 등이 그에 속한다.

이때 관계 맺기에 별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서른 살이 넘으면 싫은 상황과 싫은 사람을 견뎌 내고 존중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갖게 된다.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장단점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어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대인 관계의 폭이 다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수록 자신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편협한 관계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부족하다. 이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을 '굴목'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경우 스스로를 고립시켜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아니면 아예 친밀한 관계를 부정하고 사람들과 겉도는 관계만을 맺게 된다.

물론 사람은 모두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필요로 한다. 심리적 거리란 타인의 침입과 간섭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공격성과 파괴적인 성적 욕구가 밖으로 튀어나가 상대방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거리이다.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친밀감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상대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는 소망은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를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소망이다."

맥 아담스 박사의 말이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을 만큼 못나고 열등한 자신을 보여 줄 수 없었던 윌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만다.

윌처럼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신의 못난 모습만 도드라지게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 또한 그만큼의 혹은 더한 고통이나 슬픔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대니얼 고틀립. 그는 학습 장애로 인해 낙제를 거듭해 대학을 두 번이나 옮겨야 했지만 용기를 잃지 않은 덕분에 장애를 극복하고 심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그러나 시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러 가던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어 전신 마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때 나이 서른셋. 그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문안 온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태로도 그저 '살아야 한다'고만 말했다. 두개골이 나사에 박혀 있어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마취 기운이 떨어지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그에게 말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더 이상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고,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그는 자신의 병상 옆에 한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가 심리 치료사임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고통을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지가 멀쩡한 그녀의 얼굴은 사지가 마비되어 누워 있는 자신보다 더 어두워 보였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있는 그 앞에서 세상의 고통을 혼자 다 짊어진 양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간 현실이 너무 괴로워 자살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참으로 길게 했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사고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에 대해 들어준 것만으로도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전신 마비로도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통해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임을 발견했고, 고통을 타인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여, 어쩌면 상대방은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 또한 당신처럼 외롭고 힘들지만 그것을 차마 들키기가 싫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만약 용기를 내어 조금씩 관계의 그물을 만든다면 우울과 고통이 그물 사이로 걸러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설령 좌절은 있을지라도 더 이상 삶에 대한 회의는 하지 않게 되고, 때로 슬픔은 느낄지언정 삶의 공허함은 무사히 비켜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상대방에게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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